기금형 퇴직연금, 무조건 유리한 게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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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금형 퇴직연금, 무조건 유리한 게 아닙니다

2026.03.28 기준 / 노사정 TF 공동선언 2026.02.06 기준

기금형 퇴직연금, 무조건 유리한 게 아닙니다

2026년 2월 6일, 노사정이 20년 만에 첫 합의를 이뤘습니다. 기금형 퇴직연금 활성화와 사외적립 의무화가 핵심인데, 이걸 두고 “이제 수익률이 오른다”는 기대감이 확 퍼졌습니다. 막상 해외 실제 데이터를 들여다보면 얘기가 달라집니다.

500조+
2025년 말 퇴직연금 적립금
~80%
원리금보장형 상품 비중
20% 미만
디폴트옵션 실제 이용률

지금 퇴직연금에서 정확히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나

2026년 3월 기준, 국내 퇴직연금 적립금은 500조 원을 돌파했습니다. (출처: 금융감독원 업무설명회, 2026.03.11) 제도가 도입된 2005년과 비교하면 시장 규모가 수십 배 커졌지만, 지금까지 쌓인 비판의 핵심은 딱 하나였습니다. 수익률이 너무 낮다는 것.

고용노동부 퇴직연금복지과장은 2026년 3월 11일 업무설명회에서 언론에서 지속 제기된 “5년 평균 수익률 2%대” 비판을 직접 인정하며 이를 제도의 ‘아킬레스건’이라 표현했습니다. 실제로 퇴직연금 자산의 약 80%가 여전히 예금 같은 원리금보장형 상품에 묶여 있습니다. 이 비중이 물가 상승률을 따라가기 어렵다는 건, 숫자로 이미 증명된 상태입니다.

이런 배경 속에서 2026년 2월 6일, 노사정 TF가 사상 처음으로 합의 선언을 내놓았습니다. 기금형 퇴직연금 활성화와 사외적립 의무화, 이 두 가지가 뼈대입니다. (출처: 고용노동부 보도자료, 2026.02.06, moel.go.kr)

기금형이란 정확히 어떤 구조인가

지금까지 우리나라 퇴직연금은 거의 전부가 ‘계약형’이었습니다. 회사나 근로자가 은행·보험·증권사 같은 금융기관과 1:1로 계약을 맺고, 각자의 계좌에서 운용합니다. 가입자마다 각자 자기 도시락을 들고 다니는 구조입니다.

기금형은 다릅니다. 사업장과 독립된 별도의 수탁 법인이 세워지고, 여러 가입자의 돈이 하나의 기금에 모입니다. 전문 운용팀이 장기 분산 투자 전략으로 굴리고, 수익과 위험을 가입자들이 함께 나눕니다. 이번 노사정 합의에서는 금융기관 개방형, 연합형, 공공기관 개방형 등 다양한 기금 유형을 허용하기로 했으며, 국민연금은 300인 이하 중소기업 대상 기금 운용에 한정해 참여할 수 있도록 정리됐습니다.

특히 유럽에서 주목받는 집합적 확정기여형(CDC, Collective Defined Contribution)은 기금형의 한 변형입니다. 국민연금연구원 유호선 연구위원은 ‘집합적 확정기여형 퇴직연금에 관한 이론적 논의’ 보고서에서 CDC의 핵심을 “집합적 기금 + 평탄화(Smoothing) 기법”으로 설명합니다. 시장이 좋을 때 수익 일부를 적립해두고, 시장이 나쁠 때 풀어서 연금액을 보전하는 방식입니다. 덴마크 ATP가 대표 사례로, 이 구조 덕분에 개인이 은퇴 시점에 시장 폭락을 그대로 맞는 상황을 방어할 수 있습니다. (출처: 연합뉴스, 2026.01.10, yna.co.kr)

💡 공식 발표문과 실제 운용 흐름을 같이 놓고 보니 이런 차이가 보였습니다

노사정 합의문은 기금형과 계약형이 “공존”하고 “선택권 확대”가 목적이라고 명시했습니다. 즉, 기금형이 의무가 아니라 선택지로 추가되는 것입니다. 전환 여부는 결국 가입자와 사업장의 선택에 달렸습니다. 이 점이 기금형 효과를 좌우하는 핵심 변수입니다.

일본·영국 데이터가 보여주는 불편한 진실

기금형을 지지하는 논리의 핵심은 해외 수익률입니다. 미국 401k는 2019~2023년 5년 평균 9.7%, 호주 슈퍼애뉴에이션은 5.3%였으니, 한국의 2%대보다 월등히 높은 건 사실입니다. (출처: 서울경제 시그널, 2025.08.05)

그런데 기금형과 계약형을 모두 운영하는 나라를 보면 결과가 다릅니다. 같은 기간 일본은 계약형 6.0%, 기금형 4.4%였습니다. 기금형 수익률이 계약형보다 1.6%포인트 낮았습니다. 영국도 계약형 6.0%에 기금형 5.6%로, 계약형이 소폭 앞섰습니다. 기금형이 반드시 계약형보다 수익률이 높다는 공식은 성립하지 않습니다.

국가 기금형 수익률(5년) 계약형 수익률(5년) 비고
미국(401k) 9.7% 기금형 중심 구조
호주(슈퍼애뉴에이션) 5.3% 기금형 중심 구조
일본 4.4% 6.0% 계약형이 높음
영국 5.6% 6.0% 계약형이 높음
한국 도입 전 약 2%대(5년 평균) 계약형 단독 구조

출처: 서울경제 시그널(2025.08.05), 고용노동부·금감원 업무설명회(2026.03.11)

수익률은 구조보다 자산배분과 시장 환경에 더 크게 좌우됩니다. 미국 401k가 9.7%를 기록한 건 기금형이기 때문이 아니라, 미국 주식시장이 같은 기간 크게 올랐기 때문이라는 해석도 무시할 수 없습니다.

디폴트옵션이 먼저 실패한 이유가 있습니다

기금형 이전에 수익률을 높이려는 정책이 이미 하나 있었습니다. 2022년 7월 시행된 디폴트옵션, 즉 사전지정운용제도입니다. 운용 지시를 하지 않으면 미리 정한 방법으로 자동 투자되도록 한 제도인데, 3년 반이 지난 지금 실제 이용률은 20% 미만입니다. 그나마 대부분이 원리금보장형이 담긴 ‘초저위험’ 옵션을 골랐습니다. (출처: 한국경제매거진 비즈니스 칼럼, 영주 닐슨 성균관대 SKK GSB 교수, 2026.02.25)

이 숫자가 의미하는 건 단순합니다. 좋은 제도를 도입해도 가입자가 선택하지 않으면 효과는 없습니다. 기금형도 마찬가지입니다. 가입자가 기금을 신뢰하지 않으면, 도입 자체가 있어도 실제 운용 자산이 기금으로 이동하지 않습니다. 수익률 제고와 규모의 경제 효과는 모두 기금 선택이 실제로 일어날 때만 가능한 이야기입니다.

💡 디폴트옵션 3년의 경험을 기금형 설계에 대입해 보니 이런 구조적 문제가 보입니다

디폴트옵션에서 가입자들이 초저위험을 선택한 건 게으름이 아니라 손실 책임에 대한 두려움입니다. 실제로 기업 퇴직연금 담당자들은 “교육을 했다가 직원이 따라 했는데 손실이 나면 나한테 책임 묻는 것 아닌가”라는 우려를 공통적으로 표명했습니다. 법적 면책 장치가 없으면 기금형에서도 같은 패턴이 반복될 수 있습니다.

2026년 9월부터 달라지는 것, 지금 챙겨야 할 것

기금형 도입 일정은 아직 구체화 중입니다. 고용노동부는 2026년 7월까지 유형별 세부 제도안을 마련하고, 연내 관련 법 개정을 추진할 계획입니다. (출처: 정책브리핑, 2026.03.11, korea.kr) 즉, 지금 당장 기금형이 시행되는 게 아니라 제도 설계 단계입니다.

반면 이미 확정된 변화가 있습니다. 2026년 9월부터는 DC형·IRP 퇴직연금 계좌의 ‘실물이전(자동이동)’ 제도가 시행됩니다. 기존에는 금융사를 바꾸려면 보유 상품을 다 팔고 현금으로 이전해야 했는데, 앞으로는 보유한 상품 그대로 다른 사업자로 옮길 수 있게 됩니다. 이 제도가 시행되면 수익률이 낮은 사업자에서 높은 사업자로 이동하는 비용이 크게 줄어듭니다. 사업자 간 경쟁이 심해지는 이유입니다.

사외적립 의무화 일정도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정부는 2026년 6월까지 중소기업 실태조사를 마치고 단계적 의무화 방안을 검토합니다. 현재 퇴직금 제도만 운영하는 중소기업이라면 이 흐름이 직접 영향을 줍니다.

DC형 가입자라면 지금 이것만큼은 점검해야 합니다

기금형 도입이 완료되려면 최소 2027년 이후가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전까지는 현재의 DC형 계약형 구조 안에서 스스로 수익률을 관리해야 합니다. 자본시장연구원이 2025년 9월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2024년 기준 DC형 전체 적립금 118.4조 원 중 76.7%인 90.8조 원이 원리금보장형 상품에 투자되어 있었습니다. DC형 원리금보장형 상품의 2024년 수익률은 3.51%였고, 같은 해 DB형 원리금보장형 수익률은 3.81%였습니다. (출처: 자본시장연구원, 2025.09, kcmi.re.kr)

이 수치는 중요한 사실을 보여줍니다. DC형 가입자가 원리금보장형만 고른다면, 수익률이 DB형보다 오히려 낮습니다. 운용 책임을 개인이 진다는 DC형의 특성을 살리지 못하는 셈입니다.

아래 세 가지가 지금 당장 점검할 수 있는 내용입니다.

  • 원리금보장형 비중 확인: 금융감독원 통합연금포털(100lifeplan.fss.or.kr)에서 내 계좌 내 상품 구성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전체의 70% 이상이 원리금보장형이라면 의도적인 선택인지 방치인지 구분해야 합니다.
  • 디폴트옵션 설정 여부 확인: 운용 지시를 하지 않은 상태라면 현재 설정된 디폴트옵션이 어떤 것인지 확인하세요. 초저위험 옵션이 기본값인 경우가 많습니다.
  • 2026년 9월 전 사업자 비교: 실물이전 제도가 시행되면 경쟁이 격화됩니다. 미리 사업자별 수익률과 수수료를 비교해두는 게 유리합니다.

Q&A

▶ 기금형 퇴직연금은 언제부터 실제로 가입할 수 있나요?
현재는 2026년 7월까지 세부 제도안을 확정하고, 연내 법 개정을 추진하는 단계입니다. 실제 기금형 가입은 법 개정 이후 시행령 정비까지 마쳐야 가능하므로, 빠르면 2027년 이후로 예상됩니다. 공식 일정은 고용노동부가 발표하는 내용을 통해 확인할 수 있습니다.
▶ 기금형을 선택하면 원금 손실이 생길 수 있나요?
기금형은 원리금이 보장되지 않습니다. CDC 방식처럼 ‘평탄화’ 기법으로 급격한 손실을 완충하는 설계가 가능하지만, 투자 성과에 따라 수령액이 조정될 수 있습니다. 반드시 원금 보장을 원한다면 계약형 내 원리금보장상품이 맞습니다.
▶ 현재 DB형에 가입한 직장인은 이번 개편이 영향을 주나요?
이번 노사정 합의에서 기금형 적용 대상은 DC형을 중심으로 논의됐습니다. DB형은 회사가 적립금을 운용하는 구조라 직접 영향은 제한적입니다. 다만 사외적립 의무화가 확대되면 DB형 운영 기업의 추가 적립 압박이 커질 수 있고, 이를 피하기 위해 DC형 전환을 유도하는 사업장이 늘어날 수 있습니다.
▶ 퇴직연금을 중도에 인출하거나 일시금으로 받는 게 막히나요?
아닙니다. 노사정 합의문에는 “중도인출이나 일시금 수령에 대한 근로자의 선택권은 현행 퇴직연금제도와 동일하게 보장된다”고 명시되어 있습니다. (출처: 고용노동부 보도자료, 2026.02.06) 현재 법령 범위 내에서 중도인출 요건(무주택, 장기요양 등)에 해당하면 기존과 동일하게 활용할 수 있습니다.
▶ 중소기업 재직자는 국민연금이 운용하는 기금에 들어가게 되나요?
국민연금의 퇴직연금 기금 운용 참여는 300인 이하 중소기업 대상에 한정되는 방향으로 정리됐습니다. 강제 편입이 아니라 ‘공공기관 개방형 기금’의 선택지 중 하나로 제공되는 구조입니다. 구체적인 참여 범위는 관계부처 의견 수렴 후 추가 확정될 예정입니다.

마치며

기금형 퇴직연금은 방향 자체는 맞습니다. 500조 원이 쌓인 시장에서 80%가 원리금보장형에 묶여 있다는 건, 설계 차원의 문제입니다. 전문가가 장기 관점으로 운용하고 위험을 분산하는 구조가 필요하다는 진단에 동의합니다.

다만, “기금형이 도입되면 수익률이 오른다”는 결론은 과합니다. 일본과 영국 데이터는 기금형이 계약형보다 수익률이 낮게 나온 반례를 보여줬습니다. 디폴트옵션이 도입 3년 반에 이용률 20%에 그친 현실도 외면하기 어렵습니다. 제도가 작동하려면 가입자의 신뢰와 선택이 따라와야 하고, 이를 위한 금융교육 강화와 법적 면책 장치가 선행 조건입니다.

당장 움직일 수 있는 건 기금형 도입보다 내 계좌 안에서의 운용 개선입니다. 2026년 9월 실물이전 제도 시행을 앞두고, 지금 내 퇴직연금 수익률과 상품 구성을 점검해두는 것이 먼저입니다.

📎 본 포스팅 참고 자료

  1. 고용노동부 — 「퇴직연금 기능강화를 위한 노사정TF 공동선언문」 (2026.02.06) — moel.go.kr
  2. 정책브리핑 — 「20년 만에 퇴직연금 제도 대대적 개편, 모든 사업장 의무화 추진」 (2026.03.11) — korea.kr
  3. 자본시장연구원 — 「국내 DC형 퇴직연금의 투자 성과와 자산운용 개선 방향」 (2025.09.29) — kcmi.re.kr
  4. 금융감독원 — 「2026년도 연금 부문 금융감독 업무설명회」 (2026.03.11) — 100lifeplan.fss.or.kr
  5. 연합뉴스 — 「노후불안 잡는 제3의 퇴직연금 CDC 기금형 주목」 (2026.01.10) — yna.co.kr
  6. 서울경제 시그널 — 「퇴직연금 기금형 美 수익률 10% 英·日선 계약형이 더 이득」 (2025.08.05)

본 포스팅은 공개된 공식 자료를 기반으로 작성됐으며, 투자 권유나 금융 상담을 목적으로 하지 않습니다. 퇴직연금 운용 의사결정은 전문가와 상담하시기 바랍니다. 본 포스팅 작성 이후 서비스 정책·UI·기능이 변경될 수 있습니다. 제도 개편 일정 및 세부 내용은 고용노동부·금융감독원 공식 발표를 통해 최종 확인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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